12과 - 날 향한 모든 순간
"하나님이 제 인생을 다 계획하셨다면서, 왜 애초에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하나님의 섭리'라는 단어를 읽으며, 어쩌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내게 일부러 아픔을 주시려고 계획하신 걸까?'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질문이 드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또 건강한 과정입니다.
섭리라는 말은 우리를 고통 속에 빠뜨리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아픔이나 넘어짐을 겪을 때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에 가깝습니다.
그 아픔 속에서 기필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더 단단하고 아름답게 빚어가시겠다는, 끝없는 책임감이자 사랑의 기록으로 이 글을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성경이 인생의 정답지라고요? 제 진짜 현실 문제에는 아무 답도 없던데요."
당장 내일 치러야 할 수학 시험의 범위도 막막하고, 엉켜버린 친구 관계로 마음이 무거울 때, 성경을 펼친다고 해서 수학 공식이나 친구의 마음을 돌리는 마법의 문장이 튀어나오지는 않지요.
그래서 성경이 내 현실과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버튼을 누르면 정답이 나오는 자판기라기보다는, 캄캄한 밤에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당장 눈앞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주진 않지만, 이 복잡한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끊임없이 일러주는 따뜻한 길잡이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뜻대로 된다면, 제가 아등바등 노력할 필요가 있나요?"
'어차피 모든 것이 정해진 계획대로 흘러간다면, 내가 굳이 밤을 새워가며 피곤하게 노력할 이유가 있을까?' 참으로 예리하고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를 정해진 운명대로만 움직이게 하는 프로그램이나 리모컨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스스로 땀 흘리고, 때로는 실패도 겪으며 자유롭게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그 모든 치열한 과정을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시는 든든한 반석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내딛는 최선의 발걸음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으며, 그 노력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품는 사람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항상 응원하고 계십니다.
"시편 기자는 고난 중에도 '말씀이 즐거움'이었다는데, 전 솔직히 스마트폰과 게임이 더 좋아요. 전 가망이 없나요?"
'나는 유튜브나 게임이 백배 천배는 더 즐거운데, 영영 믿음이 없는 걸까?' 글을 읽으며 혹시라도 자책감을 느꼈다면, 그 무거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다고 먼저 말해주고 싶습니다.
10대의 시간에 흥미로운 미디어와 친구들에게 마음이 향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생기 있는 모습입니다.
시편의 기록자도 처음부터 말씀만이 즐거워서 그런 글을 남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살아가며 마음이 무너져 내릴 때, 세상의 어떤 재미로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위로를 경험했기에 남길 수 있었던 고백이겠지요. 지금은 그저 억지로 꾸미지 않은, 여러분의 솔직한 모습 그대로 머물러도 충분합니다.
"시험은 끝나는 시간이라도 정해져 있지, 제 고난은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죠?"
학교의 중간고사는 달력에 끝나는 날짜라도 적혀 있지만,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짓누르는 막막함이나 진로에 대한 불안감은 도무지 언제 끝날지 몰라 글을 읽는 내내 답답했을 수 있습니다.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은 누구에게나 가혹하게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겉보기엔 앙상하게 얼어붙은 듯한 겨울나무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봄에 틔울 꽃을 위해 가장 치열하게 뿌리를 뻗고 생명을 품어내는 것처럼, 지금 여러분이 통과하고 있는 이 막막한 기다림의 시간 역시 가장 깊고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소중한 계절임을 글로나마 꼭 전하고 싶습니다.